5mstory
조선시대의 사이코패스 학자 권채의 잔인한 범죄 본문
조선조 세종 9년 5월 22일,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해 장안에 떠들썩 했습니다.
여인이 죽은 채로 물에 내려왔는데 시체는 온몸에 상처자국이 있었고 성기에서 항문까지의 부위가 칼로 도려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얼굴 마저 도려내져 신원을 알수도 없었습니다..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 있었습니다..
사건을 조사하고 거리를 순찰 했습니다..
세종 22년에 이를 바탕으로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편찬함, 시체를 검시 하는법등이 상당히 자세 하게 나옵니다)'
을 바탕으로 시신을 과학적으로 조사합니다
얼굴을 그려냈는데 이를 바탕으로 신원을 조회한 결과 덕금이라는 여인으로
당시 최고 문장가이자 집현적 학자인 권채의 몸종이란걸 알게 됩니다..
들어가지 못하자 아얘 잠복을 했는데 잠복 한지 4일정도 되자 한 여인이 갑자기
대문을 열고 도망나오고 몇몇의 남자들이 그녀를 쫓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앙상 했습니다..
그녀의 진술로 인해 끔찍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 졌는데
권채가 수하들을 시켜 여자들을 납치해서 일주일간 잔인하게 성고문해 죽인 거였죠..
그는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도려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여자의 입을 솜으로 막은 다음 불에 달군 쇠로 음부를 지지고
개의 변을 먹게 하는등 성고문 방법은 잔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학문 연구를 했을 뿐이라고 일축 했죠..
결국 무혐의로 풀려 나고 좌천 되지만 곧 복귀 합니다..
대신 애꿎은 권채의 처 정씨가 질투로 노비를 살해 했다는 누명을 받아
곤장 아흔대를 맞다가 죽었죠..
이건 뭐 현 시대의 악마같은 사이코패스 보다도 더 잔인한거 같은데..
집현전 학자이자 문장가(文章家 [명사] 글을 뛰어나게 잘 짓는 사람.) 라는 사람이 정말 그런일을 했을까...
학문연구라고 하니 아무죄도 없는게 되는 세상이었다 하니..뭐 말 다했지만...
역사서에는 처 정씨가 남편의 대한 집착,질투심으로 비롯된 살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아래는 권채의 처 정씨의 범행에 무게를 둔 관점에서 적힌 기록인듯 하다
둘 중 하나는 진실이겠지..읽어보고 판단하시길...
1427년 8월 20일. 거리에서 한 사나이가 알 수 없는 물건을 지고 가는 것이 발견 되었다. 그것은 사람과 비슷한 형상이었으나, 뼈와 가죽만 파리하게 붙은 처참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것은 덕금(德金)이라는 여자로 밝혀졌다. 덕금은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로 재직하고 있는 권채(權採)의 종으로, 권채와 그 일가족을 조사한 결과, 무서운 사실이 밝혀졌다.
권채는 덕금을 사랑하여 첩으로 삼았는데, 권채의 아내 정씨(鄭氏)는 종인 덕금에게 강렬한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덕금은 덕금의 할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를 찾아 뵈러 집을 잠시 떠날 것을 청했다. 하지만 평소에 덕금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정씨는 덕금이 그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을 허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덕금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의 할머니 생각이 너무도 애틋하여, 허락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잠시 집을 떠나게 된다.
덕금이 사라지자 권채는 덕금을 찾게 되었고, 정씨는 권채에게 덕금이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간통하러 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권채는 격렬하게 질투하고 분노하게 되어, 덕금이 돌아오자마자 덕금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몽둥이로 덕금을 마구 구타하였다. 권채는 덕금의 왼쪽 발에 족쇄를 채워서 외딴 방에 감금하였다. 이후, 권채 일가는 잔혹하고 변태적으로 덕금을 괴롭히게 된다.
장씨는 덕금을 바로 칼로 베어 죽이려 했는데, 또다른 여자종인 녹비(祿非)가 칼로 죽인 시신은 소문이 나기 쉽고 금새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으니, 서서히 고문하면서 병들고 굶어 죽도록 하자는 제안을 한다. 장씨는 녹비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감금되어 있는 덕금을 그대로 굶어 죽이기로 한다. 장씨는 덕금이 덕금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비참한 모습으로 족쇄를 차고 방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고, 굶주린 덕금에게 그 오물을 먹으라고 지시한다. 덕금은 오물 사이의 구더기를 보고 질겁하여 격렬히 저항하였는데, 그러자, 장씨는 덕금의 가랑이 사이에 바늘을 찔러 넣으면서 덕금을 괴롭혀서 결국 덕금이 구더기와 오물을 먹게 만든다. 덕금은 그렇게 몇 달 동안이나 갇힌 채 매일 고문 받으면서 서서히 굶어 죽어 갔고, 마침내, 비참한 몰골의 굶어 죽은 시체가 되었다고 보고 걸레처럼 버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덕금은 발견되던 순간까지 죽지 않은 상태였다. 제정신과 온전한 몸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해 살아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조정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권채와 정씨, 그 밖에 권채 집안의 종들을 모두 조사했으며, 권채의 아내인 정씨가 주범으로 모든 죄의 벌을 받게 된다.
권채는 정씨에게 속았을 뿐이며, 덕금의 잔인한 처벌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지를 얻어 권채는 이후에도 당당하게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실제로 권채는 유능한 학문적 재능을 보였으므로,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당시 조정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 받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덕금에 대한 온갖 잔혹한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권채는 정말로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기 보다는,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교묘하게 처신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뛰어난 학식을 자랑한 고아한 양반이었던, 권채는 조선시대 최악으로 손꼽히는 감금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상 이치가 허망하게도 권채가 남긴 저작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것은 인간의 예절과 도리에 대해서 사례를 든 책인 "삼강행실도"의 서문을 쓴 것이다. 덕금은 곧 사망했지만, 후에 권채가 쓴 "삼강행실도"는 우리나라 한문학의 걸작선을 모아 편집한 "동문선"에까지 등재 되어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권채가 쓴 삼강행실도의 서문 본론 부분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임금과 어버이와 부부의 인륜에 대한 충, 효, 절의(節義)의 도리는 바로 하늘이 내린 천성으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갖고 있는 것이다. 천지가 처음 생길 때부터 같이 생겼고 천지가 끝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천성이다."
둘 중 어느것이 진실이라고 한들...삼강행실도라는 도덕서를 집필한 사람이 할 행동들은 모두 아니었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생자가 분명히 있었단 사실도 다르지 않다..
머리에 든게 많다고 해서 돈이 많다고 해서 절대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거..ㅡㅡ
현대에도 사이코패스라는 이름을 한 악인들이 있듯...
조선시대도 다를바 없었나보다...